내가 찾던 뮤즈에 대한 이야기
제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은 그림책과 만화, 애니메이션입니다. 연필과 크레파스만 있으면 어디든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좋아하는 공주 캐릭터를 그리고 다녔습니다. 그 당시까지는 작가에 대한 꿈보다는 하루하루 충실히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점점 한두 해가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동화책을 직접 만들고 싶어 무지 노트에 동화책 형식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생 때는 웹툰을 그리고 싶어 네이버 도전 만화에 만화를 그려 올리곤 했습니다. 중고등학교까지는 제가 그저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았지만, 창작자의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때는 20살 재수 시절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유독 재수 시절이 힘들었다고 하셨지만, 저에게는 그 시절이 제가 하고 싶은 방향을 강렬히 꽂히게 해준 시절이었습니다. 실기에 떨어진 후, 마지막으로 내가 재수한다면 포트폴리오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시 기간 동안 강사 선생님들과 원하는 방향의 그림 스토리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생각만 했던 창작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하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토리, 캐릭터, 콘셉트, 색감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종이 위에 작품을 한두 개씩 완성할 때마다 저에 대한 확신을 얻어 갈 수 있었죠. 저는 창작하는 것을 좋아하고, 디지털보다 수작업을 선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서일페에 나간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제목은 ‘이 세계로의 여행’입니다.
줄거리는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요정들로 인해 다른 세계로 가서 힐링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가 번아웃이 왔을 때 누워서 상상하던 장면들이 이어지고 이어지며 대략적인 초기 콘셉트가 들어졌습니다. 이불 속에서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던 시절, 생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러다 다른 곳으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표현된 것 같네요.
저는 다양한 것들을 보고 영감을 받습니다. 음악, 춤, 일상, 자연, 만화, 애니메이션, 음식 등등 그때그때 영감을 받는 것을 스토리로 만들고 장면들을 상상합니다.
MisterWives _ SUPERBLOOM
리서 작가님에게 힘이 된 문구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참여가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언젠가 꼭 도전해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지원 사업과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참가 신청을 동시에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원 사업은 떨어졌지만, 페어에는 예상치 못하게 선정되어 당황했었습니다.
대학에서 졸업 작품을 준비하며 돈을 모아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를 위한 굿즈를 제작하고, 처음으로 굿즈 디자인에 도전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밤새워 작업하며 거의 먹지 않고 워커홀릭처럼 몰두한 끝에 겨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얻은 교훈은 자신을 감싸 안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할 것이 너무 많은 상태에서 휴식 없이 달리다 보면 꼭 과부하가 옵니다. 하지만 저에게 주어진 상황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땐 자기 자신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오그라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하루에 5~10분 정도는 제 자신과 대화를 합니다. 거울을 보거나 밖에서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혼잣말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감정이 올라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반복할수록 저는 제 현재 상태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여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힘들었던 감정을 인식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거나, 그 감정을 해소할 시간을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10년 전의 저라면 15살이었네요.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과 감정을 마음껏 만끽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미성숙한 것이 당연하니, 그 미성숙함을 통제하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10년 후의 저는 여전히 수작업 만화를 고집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도 다양한 일상에서 눈길을 끄는 여러 것들을 그리고 있겠죠. 그리고 그 시기에는 아마도 제 자식이 제 큰 영감이 될 것 같습니다.
“너를 그리니?”라는 표현 아래, 숨김없이 편안하게 그린 그림을 좋아하고, 그런 그림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너를 그리니?”라는 말과 함께 올린 그림들은, 사실 그때그때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린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그림들도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주제나 오랜 고민 끝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담은 것들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게 두렵고, 평가받는 것이 무서워서 방에서 그리는 낙서조차도 깊이 고민하며 그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이 세계로의 여행”을 그리면서는 그런 생각들을 최대한 내려놓고, 일부러 머리를 비우고 그렸습니다. (웃음)
놀랍게도, 깊이 고민한 그림들보다 편안한 상태에서 그린 그림들이 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제가 원했던 느낌도 훨씬 잘 표현되었어요.
사진 : 리서 작가님 제공
인터뷰어 :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