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던 뮤즈에 대한 이야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다른 꿈은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을 보면 4살과 5살 때 지나가는 차들이나 비행기들을 그렸었는데,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비슷해질 때까지 연습을 했었던 기억은 나네요.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을 옛날부터 아주 좋아했습니다. 귀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시끄러운 소리도 아주 작아지며 마치 나만의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는 이런 자신만의 공간이나 시간을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너무 바쁘고, 일상이 힘들어 부족한 시간을 아껴가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제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먼저, 창작할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려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 들까부터 생각해 봅니다. 그다음엔 화면 배치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요. 예를 들어, 사람이 어느 쪽을 쳐다보고 있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색감은 어떻게 해야 그 분위기와 잘 맞을지를 생각하죠. 손으로 직접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없지만, 최대한 손으로 그린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디지털로 작업하면서도 수채화 느낌을 내는 다양한 도구들을 많이 사용해요.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성되면, 화면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색감을 보정하고 마무리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늘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모든 행위들은 제 생각에,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봐요. 누구보다도 더 빠르고 편하게 행복을 영유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으며,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쉼’에 대해서는 너무 모른척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저는 우리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삶의 기준과 철학을 형성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각자의 휴식에서 자라난다고 확신합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Behind the Gare saint-Lazare, Paris” 이라는 사진을 굉장히 좋아해요. 너무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려서 금방 없어지고 마는 여러 상황들이 있어요. 그 모든 것을 다 인지하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죠.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대단하고 멋진 어떤 장소에서만 나오는 감정은 아니라고 봐요. 길 가다가 만나는 잡초 위의 꽃과 같이 우리들 주변에 아주 많이 숨겨져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행복한 그 찰나의 순간을 그림에 영원히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에 임합니다. 그래서 사소한 부분이나 어릴 때 있었던 아주 작은 행복의 조각을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존 러스킨의 여행 방법에 대한 알랭 본인의 생각을 잠시 읊어 놓은 문장이 있는데, 그 부분도 아주 좋아하구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 이런 글이었던 것 같네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거실에 있는 소파의 방향을 바꾸세요. 당신이 집에 와서 그곳에 앉는 순간, 새로운 환경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이 두 경험을 통해 저는 각자가 가진 방식 안에서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보이지 않던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저의 창작활동에 대한 영감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직업이죠. 프리랜서로서 겪는, 또는 겪을 수밖에 없는 돈에 대한 불안감과 자기 불확신이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여러 요소들이 우리를 더 강하게 단련하기보다는 좌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많은 작가들이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을 현재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불안감이 극에 달했던 적이 있어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으며, 그림을 그려도 ‘돈이 될까’ 하는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안감을 아내가 옆에서 많이 지워 주었어요. 누군가를 믿고 기다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저는 정말 열심히 그렸습니다. 사랑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려면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짧은 시간에 내가 바라는 큰 소득은 절대 오지 않습니다. 물론 우연도 있죠. 갑자기 유명해지며 삶이 크게 바뀌는 경우를 보면서 저도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저의 노력과 쌓아온 모든 과정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치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보상은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딱 그들이 생각한 만큼만 주어집니다.
젊었을 때 돈을 벌며 자취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좀 허투루 썼어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매일을 놀고 먹는 데만 썼죠.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후회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보라’고 말할 것 같아요. 시간은 아주 많으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분하게 미래를 바라보라고요. 물론, 그때의 저는 아마도 그 조언을 듣지 않았겠지만요.(웃음)
글쎄요, 지금까지 ‘휴식과 찰나의 순간’이라는 모토로 작업해 왔으니, 앞으로도 비슷한 방향으로 계속 작업할 것 같아요. 작년부터는 해외 페어와 전시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인데, 제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는 경험을 하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에서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질 것이고, 이러한 일들이 제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반복적인 일상, 지루한 삶이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어제의 모습에 오늘의 ‘나’를 끼워 맞춥니다. 아마 내일도 눈을 뜨면 비슷한 하루가 펼쳐지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상상을 하며 자신이 누리지 못한 다른 삶을 대리 만족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나 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 변화가 아주 작은 영감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어떨까요?
저는 오늘과 내일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주변 청소를 합니다. 그동안 쌓인 과거의 제가 만든 무언가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발견하죠. 그리고 비워진 그 공간에 남아 있는 것들로 새롭게 배열합니다.
겨울의 추운 날씨를 피해 안에 들여놓았던 책상을 가을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베란다로 옮겨보기도 하고, 키우던 고양이가 무언가를 구경하며 놀 수 있도록 새로운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것도 꽤 재미있겠네요. 가끔은 커튼 색을 바꾸어, 겨울 내내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준 커튼을 여름 동안 쉬게 합니다. 이런 변화는 주변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익숙했던 풍경에서 또 다른 새로운 각도로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하죠.
이런 간단한 방식이 꼭 창작을 업으로 삼는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누구든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건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마음과 그저 작은 행동력 하나뿐입니다. (웃음)
사진 : 기티 작가님 제공
인터뷰어 :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