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순수한 상상을 그리는, 그리지영 - 굿즈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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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

내가 찾던 뮤즈에 대한 이야기

Interview

to get to know the story of the muse

SINCE 2024

따뜻하고 순수한 상상을 그리는, 그리지영

A dream of becoming an artist was planted in me.

내 안에 작가라는 꿈이 심어졌다.

그리지영_어린시절
그리지영_어린시절

Pick A Seed ・ 씨앗을 고르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활동이나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 이미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키웠었나요?

어린 시절의 저는 인형 놀이를 가장 좋아했어요. 인형에 이름을 짓고 성격을 만들고, 관계성을 부여하며 대화를 연기하면서 놀았죠. 그때는 인형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들도 모두 살아있다고 느꼈어요. 저의 가장 오랜 친구는 파란색 작은 베개였는데, 그 친구가 너무 낡아서 이별할 때 정말 슬피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안에서 노는 것이 따분할 때는 밖에 있는 풀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또 오겠다고”말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다시 찾은 풀이 어제와 같은 풀인지 헷갈려서 미안해했던 기억도 나네요. 어린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다 캐릭터였어요. 저는 상상하면서 저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이야기 속에 빠져있을 때 가장 행복했어요. 그 당시에는 단순히 공상을 즐겼을 뿐, 미래에 제가 작가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Plant A Seed ・ 씨앗을 심다

작가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나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학창 시절에 꾸준히 그림 그리는 삶을 살았지만, 입시 미술을 경험하고 난 이후로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스스로 그림으로 경쟁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취업도 했습니다. 그런데 안정적인 직장 생활이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그림 그릴 시간만 기다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일러스트 학원 저녁 반을 등록하고, 퇴근 후에 매일 그림 그리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 해방감이 엄청났어요. 그림 그리며 사는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고 설레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의 작가명을 그때 지었습니다. 이번 생은 그림을 ‘그리’는 ‘지영’이로 살자는 뜻으로 ‘그리지영’으로요.

As I dreamt, buds of inspiration sprouted.

꿈을 품다 보니, 영감의 싹이 트여갔다.

그리지영 대표작품_평화의바다
그리지영_꽃요정의플라워카페
그리지영_나무뿌리 온천
그리지영_토끼네 당근 농장

sprout · 싹이 트다

대표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세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선택한 작품은 <평화의 바다>입니다. 최근에 그린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작업했고, 그림을 완성한 후에도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의 그림에 매달리다 보면, 종종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림에 마음과 생각을 담기보다는, 실제와 흡사한 모습으로 가득 채워야겠다는 강박이 더 앞설 때도 있죠.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재미 없어지고 완성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반면, 이 그림은 소재, 레이아웃, 컬러 선택 등 어떤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끼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부터 일반적인 논리에 어긋나죠. 실제로 물속에서는 아무리 건반을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리는 과정에서 저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왼편 바위 뒤에 숨어있는 노란 친구는 저도 정체를 모르는 신비한 생물이에요. 제 상상의 바닷속에는 저런 친구가 하나쯤 살고 있을 것 같아서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본 그 누구도 저게 뭐냐고 묻지 않았어요. 굳이 그림 속 이야기를 설명하거나 무엇이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공간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 있어서, 습관적으로 그림을 가득 채우곤 하는데요. 이 그림에서는 의도적으로 돌고래 주변에 약간의 여백을 남겨 두었어요. 불법 포획되었다가 자연 방류된 돌고래 제돌이를 떠올리며, 돌고래와 친구들을 그렸거든요. 더 자유롭게 헤엄치라는 의미로 주변을 틔워서 공간을 주었더니, 그림 전체가 더 시원해 보여서 좋습니다.

Grow Stems · 줄기가 자라다

선택한 작품의 창작 과정을 단계 별로 설명해 주세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대주제나 제목을 정합니다. 영감의 소재에 따라 다르지만, 대주제가 전체 배경이나 분위기일 수도 있고, 때로는 소재 자체일 때도 있어요. <평화의 바다>를 그릴 때는 자유롭고 힘차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런 후에 대주제에 어울리는 몇 가지 키워드를 노트에 적습니다. 당시 적어놓은 메모를 옮겨보자면 ‘안녕 바다 (평화의 바다)’, ‘고래, 친구’,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자유를 느끼는 사람’, ‘맑은 해초와 동물들’, ‘예쁜 물고기’, ‘시원하고 깨끗’, ‘푸른 느낌’과 같은 단어나 문장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분위기나 소재 몇 가지가 정해지면, 관련 자료를 검색합니다. 심해와 바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큰 덩어리를 중심으로 러프하게 전체 레이아웃을 잡아줍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 단계에서 위치를 잡아주고, 본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는 중심 주제인 돌고래와 친구들을 가장 먼저 그렸습니다. 그런 다음 왼쪽 아래부터 스케치를 시작해 위쪽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스케치하면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그때 자료를 찾아 추가하여 이미지를 그려나갑니다. 미리 모든 위치를 정해놓고 그리면 스케치 단계가 단조로워질 수 있어, 저는 스케치 과정에서도 그림이 자주 수정됩니다. 러프 스케치는 전체 안정감을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죠. 이렇게 상상을 하면서 화면을 채우는데,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재미를 주고 싶어서 그림 속에 황금열쇠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화면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채색에 들어갑니다. 그림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배경과 큰 덩어리의 컬러이기 때문에, 넓은 면적의 바다와 바닥 모래를 먼저 칠하고, 이후 바위의 색을 칠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전체 색감의 균형을 특히 많이 신경 쓰는 편입니다. 그 후에는 작은 이미지의 색을 자유롭게 채웁니다. 저는 자잘한 인물과 소재들은 다이내믹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채우는 것을 좋아해요.

마지막으로 ‘GREE JIYEONG’이라는 작가 서명을 화면의 하단이나 오른편에 새기면 작품이 완성됩니다.

Sprinkle water · 물을 주다

이 작품을 창작하게 된 구체적인 영감은 어디서 왔나요?

저는 자유함을 느끼고 싶을 때 유독 바다를 많이 떠올리곤 해요. 이 작품 이전에도 바다에 풍덩 빠지는 소녀를 그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심적으로 답답한 상황이었고, 그 그림의 목적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어요. 자신을 바다에 확 던져 놓고 마음을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평화의 바다>도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들과 돌고래를 통해 해방감과 평안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어요.

저는 스스로 어른이 되면서 현실이나 편견에 자주 사로잡히고 있다고 느껴요. 그런 굳어진 생각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상상으로 깰 때 희열을 느낍니다. <평화의 바다>에서 가장 첫 번째 소재가 된 돌고래 ‘제돌이’는 <1일 1환경 챌린지>라는 어린이 환경책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를 하던 제돌이는 2013년에 제주도 바다로 풀려났어요. 이후로 춘삼이, 태산이, 복순이, 금등이, 대포 같은 돌고래들도 바다로 돌아갔다고 해요.

그 친구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개운한 마음이 듭니다. 저 또한 사로잡힌 모든 것에서 힘차게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지영 작가님의 영감의 원천 "나무 바라보기"

Receive Sunlight · 햇빛을 받다

이 작품 외에도 당신의 창작 활동에 영향을 준 다른 영감은 무엇인가요?

제 작품의 영감은 삶에서 마주하고 느끼는 것들에서 옵니다. 제가 즐겨 그리는 소재를 나열해 보면, 자연, 동물, 식물, 가족, 어린이,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순수함과 따뜻함을 동경합니다. 평소 자연물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깊은 인상을 받아요. 공원에 소풍 나온 유치원 친구들, 막 피어난 연두색 여린 잎, 흙으로 뒤덮여 있지만 깔끔한 당근의 단면 같은 것을 볼 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죠. 그리고 친구나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릴 때에도 안온함을 느낍니다. 제 삶에서 바라보는 것들 중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것들의 액기스를 추출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재미도 한 스푼 추가로 넣어주고요!

There were some days when typhoons blew.

But the more I do that, the harder and deeper the roots have become.

태풍이 부는 날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뿌리는 더욱 단단하고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中,  안자이 미즈마루

"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그리지영 작가님에게 힘이 된 문구

Face the Wind · 바람을 맞다

작가로서의 활동 중 마주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작가로 산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에요. 내면의 두려움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죠. 저는 하얀 도화지를 마주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나에게 아무런 영감이나 능력이 없는 것 같다거나, 내 그림은 나만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 결국 아무도 모르는 방구석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기도 해요. 게다가 일이 많으면 잦은 밤샘 작업으로 인해 번아웃이 오고, 일이 없으면 수입을 걱정해야 합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억지로 그려내다 보면 가장 좋아했던 그림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어요. 여전히 매일 길을 찾고 있습니다. 내면적인 부분은 매일 기도하고 다이어리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번아웃이 올 때는 억지로 그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푹 쉬고 나면 다시 재미있게 그릴 때가 오더라고요. 영감을 얻는다는 핑계로 여행을 떠나거나 산책을 나가기도 해요. 내면이 환기되면서 다시 그리고 싶은 영감이 떠오르면, 백지 공포는 어느 정도 극복이 돼요.

수입적인 부분은 작가로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자신과 타협했어요. 저의 꿈은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림 그리는 삶 외에는 욕심을 내려놓자고 생각했죠. 지속적으로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만 유지하자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고 내 그림을 꾸준히 그리다 보면, 감사하게도 여러 가지 기회들이 생기더라고요.

Take Root Deeply · 뿌리를 깊이 내리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공유해 주세요.

‘잘 그리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진실한 마음으로 가장 나답게 그리자!’ ‘대충 해도 괜찮아, 재미있게 그리자!’ 이 문구들은 제 작업실에 붙어있는 메모들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남을 과하게 의식하거나 욕심이 과하면 오히려 그림이 망가지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반면, 제가 즐겁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그리면 결과물이 대체로 좋고, 남들도 그 그림을 좋아해 주더라고요. 그림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척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Blossom · 꽃이 피다

시간을 되돌려 10년 전의 자신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그 조언은 무엇일까요?

“한 번뿐인 인생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 못 그린다고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비교하지 말고, 그냥 너만이 할 수 있는 너의 작품을 해. 하루라도 빨리 그림 그리는 삶을 살아서, 네가 죽기 전에 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면 좋겠어.”

My tree of inspiration is still blooming and bearing fruit.

아직도 자라고 있는 나의 영감 나무는, 꽃이 피고 열매가 자라고 있다.

그리지영_현재 사진
그리지영_현재 사진

Bear fruit · 열매를 맺다

(R=VD):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10년 후, 어떤 작품을 창작하고 있을까요? 그때의 영감은 어디서 올까요?

만약 10년 후에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긴다면, 새로 생긴 가족과 아이에게서 가장 큰 영감을 얻고 있을 것 같아요. 아이의 관심사가 저의 관심사가 되어, 새로운 순수한 영감이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요. 엄마인 저는 아이의 상상을 공유받고 배우게 되겠죠.

그리고 최근 저의 그림들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하거나 독자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할 수 있도록, ‘빔멜북(Wimmelbuch, 글자 없는 그림책)’ 형식으로 그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와 같이 타인의 상상을 자극하고, 그림을 통해 놀이의 경험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을 것 같아요.

what do you like? What inspiration do you get?

그래서, 너는 무엇을 좋아해? 그리고 그것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

그리지영_Likes and Inspirations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전시 보기”
그리지영_Likes and Inspirations “다이어리 쓰며 생각 정리하기”
그리지영_Likes and Inspirations “하루 마무리로 영화보기”
그리지영_Likes and Inspirations “혼자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와 디저트”
그리지영_Likes and Inspirations “축구 직관가서 환호하기”
그리지영_Likes and Inspirations “맑은 숲에서 큰 숨 들이켜기”

순수하거나 낭만적이거나 편안하거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자연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사진이나 편지를 보며 추억을 회상하기, 음악을 틀어놓고 다이어리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샤워를 마치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혼자 여유롭게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누리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를 보는 것들이요. 또한, 축구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마음껏 환호하거나, 죽이 잘 맞는 사람과의 여행, 맑은 날씨의 숲에서 큰 숨을 들이쉬는 순간도 좋아해요. 이처럼 행복한 추억과 매일의 소중한 찰나들이 결국 저에게 다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About

사진 : 그리지영 작가님 제공
인터뷰어 :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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